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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육·행사 | 국립국악원

교육·행사

[관람후기] '공무도하'를 보고

강은 새로운 강을 낳아 우리들을 움직인다

태초의 강에서 새로운 강이 태어나기까지

 

강은 태초에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. 사람들이 다니면서 거기에 길이 생기고, 길이 방죽이 되어 그 위에 비가 내리면서 강이 태어났을 것이다. 그렇다면 강은 또 다른 강을 낳는다.

 

아파트라는 거대한 강둑은 생과 전생을 가로막는 일종의 ‘강’이다. 아파트는 분명 처음에 없었다. 우리들이 살기 위해 흙을 지고 얹어 하나씩 쌓다보니 아파트라는 ‘강’이 됐다. 동과 호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내는 기어코 그 ‘강’을 건너고 만다. “내 인생이 이렇게 치사하구나 생각하면서 살았지”라고 노래하면서. 국립국악원의 음악극 <공무도하>의 시작이다.

 

강은 저기 굽이굽이 흘러 결국 바다라는 더 거대한 강으로 흡수된다. 인간의 피와 살이라는 것도 결국은 윤회의 굴레 하에 타인의 그것들과 결부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. 과연 ‘나’는 존재하는가. 아니,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. ‘나’는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우주인가. 기어이 강을 건너려는 의지는 그 모든 굴레를 끊으려는 방편이 아닐까.

 

<공무도하>는 김해숙 국립국악원장의 설명대로 “16글자로 전하는 고대 시의 원형에 동시대적 이야기를 현재 예술로 그려 내고자 한 작품”이다. <공무도하>는 아파트의 사내, 북한의 순나를 만나 사랑의 원형(原形)에 다다른 김 작가, 몽유병에 걸린 머리 하얀 미친 남편에 대한 이야기로 이뤄졌다. 세 주인공들은 모두 현실과 전생, 남한과 북한, 꿈과 꿈 너머라는 경계이자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.

 

가장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김 작가에게서 표현된다. “그곳이 지옥이라도 정 붙이고 살리라”던 김 작가는 끝내 순나를 만났던 것일까.수십 년을 기다린 끝에, 그 역시 꿈과 꿈 너머의 경계를 넘어가버린 것은 아닌가.

 

관객의 자리에서 춤을 추는 백수광부(白首狂夫)는 다시 무대로 올라와 몽유의 춤사위를 펼친다. 그를 안타까워하는 아내는 “아소, 님아 강을 건너지 말라”고 외치지만 소용없다. 백수광부가 춤을 출 때 “애착을 가질 것도 거부할 것도 없는 강 같은 세계 나는 이 강에서 꿈꾸는 황금비늘이었다”는 노래가 흐른다. 황금비늘. 황금비늘은 가장 화려하지만 현실 세계에 발붙일 수 없는 무언가이다. 동경하지만 현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.

 

다시, 강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발자국이라고 하면, 강을 건너간 그들의 행위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강을 마주한다. 관객들은 그 태초의 꿈틀거림에 동요하기 시작하고 강을 건너려고 한다. 김 작가가 고백하듯, 통일을 위해 아무 것도 한 게 없어 죄의식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강을 건너기 위한 시작일 것이다. 그렇다면 ‘공무도하(강을 건너지 마소)’는 ‘공경도하(기어이 강을 건너다)’로 충분히 확장될 수 있다.

 

아내의 입장에선 남편이 강을 건너는 것이 애달프고 안타까울 것이다. 하지만 만물의 흐름에서 보자면, 백수광부의 행위는 ‘공무도하가’라는 노래를 낳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. 지금 이 순간 관객들이 동요하는 것부터 또 다른 강이 생긴다면,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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